겨울바다를 동경하는 사람들의 심리는 참으로 묘하다. 막상 가면 10분이 채 못 돼 오들오들 떨며 "춥다, 따뜻한 데 들어가자"고 할 것을 굳이 몇 시간을 이동해 바다로 가느냔 말이다, 라는 합리적 언사에 비합리적인 감정싸움을 할 필요는 없다. 포털의 로드맵으로만 봐도 눈이 호강하는 바닷길은 합리적인 이들의 몫으로 돌린다. 단 5분을 볼지언정 바다가 주는 영감이 맨눈을 비롯한 오감으로만 담기는 이들은 간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겨울바다다.
겨울바다를 생각할 때면 늘 고독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고독을 씹고, 여유를 만끽하고, 바다 앞에서 인생을 곱씹는다, 는 자아성찰의 시간은 자율에 맡긴다. 마침 대게를 와작와작 씹을 카니발의 시간이 다가온다. 인생은 실전이다. 겨울의 끝자락에 동해안 7번 국도의 중심, 울진이다. ◆울진의 7번 국도 울진의 북쪽 끝 북면 나곡리에 있는 나곡바다낚시공원이 시작점이다. 여기선 강원도 삼척까지 자동차로 5분 거리다. 바다낚시 체험을 위해 조성된 공원이지만 꼭 낚시를 하러 가는 곳만은 아니다. 바다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공원으로 조성돼 있어서다. 바다 위를 가로지르는 잔교와 해안절벽이 조화를 이뤄 이색적인 풍경이다.
여기서 20여 분을 달려 내려가면 망양정이다. 관동팔경의 하나로 꼽힌 망양정은 겸재 정선의 망양정도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지금이야 전망 좋은 곳에 튼튼하게 자리잡고 있지만 당시 그림을 보면 절벽 위에 홀로 있는 정자처럼 보여 위태롭다. 실제 망양정도의 망양정과 현재의 망양정은 서로 다른 존재다. 현재 있는 망양정은 1860년에 옮겨온 것으로 모자라 2005년 새로 건립된 것이다. 하지만 동해바다를 한눈에 바라보는 시야 하나만큼은 탁월하다. 망양정에서 길이 두 갈래로 나뉜다. 7번 국도를 타고 울진 내륙으로 들어가느냐, 해안도로인 917번 지방도를 타고 내려가느냐의 길목이다. 7번 국도로 간다면 매화마을을 놓쳐선 안 된다. 지난해부터 '공포의 외인구단' 등 만화가 이현세의 작품이 점령한 곳이다. 까치 오혜성과 마동탁, 엄지의 얼굴에 잠시 1980년대로 돌아간다. 7번 국도의 추억을 곱씹을 때 고구마줄기처럼 따라 나오는 마을인 이곳은 7번 국도를 소재로 한 소설에 등장하기도 했다. '... 우리는 매화종합고등학교로 갔다. 학교 운동장에 텐트를 치려면 먼저 교무실로 가서 허락을 받아야 했다. 자전거로 7번국도를 여행하는 학생들이라고 소개하면, 대부분의 선생들은 흔쾌히 허락했다...' (김연수 '7번국도 Revisited' 中) 2008년 폐교된 매화종고는 현재의 매화중학교다. 매화중학교 담벼락은 지금도 이현세의 그림들로 채워지고 있다. 매화마을에서 벗어나 10분 남짓 달리면 다시 해안을 접한 국도다. 울진 사람들이 망양정보다 경치가 더 좋다고 하는 망양휴게소가 있다. 망양휴게소에서는 기성망양해수욕장이 한눈에 들어온다. 왕복 2차로의 옛 7번 국도도 만난다. 반갑기 그지없는데 기억 속 그 모습이 아니다. 괜스레 미안하고 안타깝다. 잊었던 옛 기억만 하염없이 재생된다. 아니, 기억을 고해성사하고 있다. ◆딱 한 군데만 꼽는다면 후포항 시간이 없어 울진의 단 한 곳만 갈 수 있다면 후포항이다. 울진대게의 성지인 공판장이 있고 여객선 터미널이 있고 후포 등대가 있는 등기산공원, 그리고 스카이워크가 있다. 백년손님 벽화마을도 끼워넣을 수 있다. 힐링코스로 단연 으뜸은 등기산공원이다. 오래 볼 건 아니다. 우리 동네 말로 '이래 함 스윽' 둘러보면 된다. 후포항을 한 눈에 볼 수 있고 동해 바다 망망대해를 조망할 수 있는 시각이 나온다. 세계 유명 등대 5개가 미니어처로 서 있다. 후포 등대는 진짜다. 가볍게 산책하는 데 30분이면 충분하다. 등기산공원을 걷다 왕돌초라는 이름을 접한다. 이곳에선 꽤 알려진 지명이다. 동해는 불과 100m만 나가도 심해인데 울진 후포에서 23㎞ 떨어진 곳에 수심 3~25m의 해저 벌판이 있다니. 고교시절 한국지리 좀 했다는 이들도 처음 듣는다며 당황하는 지명이다. 울진 사람들은 다 안다는 '왕돌초(王乭礁)'다. 수중 금강산이라는 별칭도 갖고 있다. 울진군은 이곳을 '동해의 심장'이라고 홍보한다. 3개의 거대한 수중 봉우리를 갖고 남북으로 긴 형상을 하고 있다. 남북 54㎞, 동서 21㎞로 여의도 면적의 10배다. 울진은 대게를 홍보할 때 왕돌초에서 잡은 걸 강조한다. 해류가 빨라지는 곳에서 자란 대게인 만큼 여느 대게보다 굵기도 굵고 실하다는 논리다. 이곳도 전설의 섬 이어도처럼 동해 어민들 사이에 구전돼 왔다고 한다. 관광지로 소개할 수는 없으나 바다낚시꾼들과 스카이다이버 사이에선 제법 알려진 곳이다. 혹시나 싶어 지도 검색을 해봤지만 없었다. 구글링에 왕돌초가 적잖이 걸린다. 왕돌초가 들어간 업장들이다. 고양, 진주, 청주, 포항, 영덕, 심지어 대구에는 3곳이나 된다. 대게를 찌거나 회를 떠 파는 식당들이 왕돌초 홍보의 첨병으로 선 셈이다.
◆스카이워크, 후포 명물로 추가 정작 울진이 홍보 전선에 내세운 대표 모델은 남서방네 처가 가족들이다. 영덕에서 울진으로 넘어오는 7번 국도에 이들의 사진이 크게 입간판으로 붙어있다. 2014년 SBS 예능프로그램 '백년손님'에 출연했던 피부과 전문의 남재현 씨 처가댁이 울진 후포다. 남재현 씨도 본인 이름보다 '남서방'으로 더 알려졌다. 남서방네 처갓집은 벽화마을로 바뀌어 관광코스가 됐다. 벽화 소재는 남서방을 비롯해 방송에 등장했던 마을 인물들이다. 가정 관찰 프로그램이 마을을 바꿔 놓았다. 마침 등기산공원과도 가깝다. 등기산공원에선 42미터 길이 출렁다리가 스카이워크로 연결해 준다. 출렁다리를 무서워하는 성인들이 간혹 있는데 계단으로 스카이워크에 오르는 길이 따로 있다.
스카이워크는 등기산 스카이워크라는 정식 명칭보다 후포 스카이워크로 불린다. 그냥 스카이워크로 통칭해도 무리는 없다. 강원도 양양 남애항 외에 동해안의 스카이워크는 이곳뿐이다. 바다 위 20m 높이에 세운 인공 산책로다. 바다 쪽으로 난 57m 구간은 바닥이 투명한 유리로 돼 있다. 투명 유리 아래로 바다가 보인다. 유리 아래 한 프레임으로 갓바위도 갇혀 들어온다. 팔공산 갓바위의 부처상과 이름만 같은 뿐 전혀 다른 암초다. 숯처럼 생긴 절리다. 가까이 가서 오를 수 있다. 위험해 보이지만 낚시꾼들이 갓바위에 올라 물고기를 낚는다. 스카이워크 아래에 관광버스들이 심심찮게 정차해 관광객들이 쏟아낸다. 후포항에서 식사하고 스카이워크를 산책하는 게 코스처럼 돼 있다고 한다. ◆대게 원산지 논쟁 울진을 세간에 알린 일등공신은 영덕과 대게 원조 싸움이었다. 울진 후포항과 영덕 축산항은 20km가 채 안 되는 직선거리다. 국경과 행정구역이 없는 대게 입장에서 보면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대게를 쪄서 파는 곳에 따라 울진대게와 영덕대게로 구분되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싶게 가깝다. 사실 동해안 대게의 최대 집산지는 포항 구룡포항이다. 요즘 말로 영덕과 울진의 '뼈를 때리는' 팩트다. 그러나 아웅다웅 하는 이들의 다툼은 결과적으로 시너지 효과를 냈다. 2월 말에 울진이, 3월 말에 영덕이 대게 축제를 열어 관광객을 그러모은다. 기선 제압에 나서는 울진대게축제는 28일부터 3월 3일까지, 영덕대게축제는 3월 21일부터 24일까지다.
울진대게축제는 후포항 왕돌초광장 일대를 무대로 삼는다. '월송 큰 줄 당기기' 등 전통 민속놀이와 대게춤 플래시몹, 대게춤 경연대회, 거일리 대게원조마을 풍어 해원굿 등 공연이 준비돼 있다. 대게 경매를 비롯해 할인 행사, 대게길 걷기 등 대게를 소재로 한 이벤트도 함께 열린다. ◆후루룩 미식의 시간 죽변항에서 후포항까지 울진의 동해안을 따라 내려오면 '삼시세끼'란 말이 무소용이다. 미식가들을 자극하는 울진의 별미는 각양각색이다. '맛있는 녀석들'의 하루 열 끼니 발언이 이곳에선 제법 진지하다. 너무도 많이 알려져 말하자니 입만 아픈 대게 소개는 생략하자. 대게는 설이 지나면서부터 살이 차기 시작해 3월까지가 한창 맛있을 때다. 신선함이 최고의 요리법이다. 와서 먹어보면 안다.
울진 대표 어항 두 곳에는 해장에 유익한 종목이 하나씩 명성을 떨친다. 죽변항의 물곰탕과 후포항의 아구지리탕이다. 해장에서만큼은 어느 쪽이 '좋아요'를 더 많이 받을지 승부를 내기 어렵다. 공교롭게도 못 생기기로 수위를 다투는 두 어종이다. 죽변항 물곰탕은 꼼치라는 어종으로 끓여낸다. 성인이 두 팔로 번쩍 들어야할 만큼 크다. 박하게 못 생겨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는 생김새다. 순두부처럼 흐물흐물하게 입에서 녹는 반전 식감에 더 잊을 수 없다. 묵은 김치와 무를 썰어넣고 끓여낸다. 쓰린 속을 편안히 잠재우는 마력이다. 조선시대부터 해장으로 명함을 내민 바 있다. 정약전의 '자산어보'에는 '해점어'라 이름붙였는데 꼼치인 것으로 추정된다. 살이 아주 연하고 뼈도 연한데 맛은 싱겁지만 술병을 잘 고친다고 기록해뒀다. 장모님에 이어 사위가 운영한다는 가게가 유명하다. 물곰탕 1만 3천원이다. 오후 2시 30분 ~ 5시 30분까지 저녁 준비 시간으로 영업을 잠시 멈춘다. 대게로 왁자지껄한 후포항에서 조금 남쪽으로 내려오면 아구지리탕으로 울진 현지 주민들의 발길을 끄는 곳이 있다. 펜션을 겸하는 가게다. 메뉴판에는 그냥 아구탕이라 쓰여 있다. 아구지리로 달라고 하면 허연 국물로 된 게 나온다. 특대, 대, 중, 소 네 가지 크기 중에서 4만원 짜리(소)면 남자 성인 2명이 배 터지게 먹을 수 있는 양이다. 기막히는 육수다. 된장콩이 국물에 섞여있다. 육수 제조법을 물으니 안 가르쳐준다. 집된장을 비롯해 대게살 등 여러 재료를 갈아 넣었다고만 일러준다. 주변에 앉아 먹던 이들이 저마다 기괴한 탄성을 지른다. 해장되는 소리다./ 애플여행사 여행정보팀 678-921-2566 www.myappletravel.com |